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달카날 해전 (문단 편집) === 전략적 의의 === 어찌보면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미국으로 넘어오게 한 결정적인 전투다. 과달카날 해전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일본 해군은 [[사보섬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로 제해권을 장악했지만, 이 해전에서 패배한 대가로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군의 힘으로 버티던 과달카날에 상륙한 일본 육군 역시 보급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극도의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지경이 되어버렸는데. 일본군이 취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구축함이나 잠수함을 이용한 소규모 수송밖에 없었다. 이 전투 이후에도 과달카날 일대에서 해전이 이어지긴 했지만, 일본군이 과달카날을 탈환하려고 벌인 해전은 없었고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전쟁의 판도를 바꾸진 못했다. 반면, 미군은 과달카날 일대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드디어 보급과 증원에 더 이상 제약을 받지 않았다. 이를 시점으로 미군은 일본군에 대해서 소극적, 방어적 대응에서 본격적인 공세로 전환했다. 헨더슨 비행장은 미군의 불침 항모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엔터프라이즈가 투입되긴 했지만 이전 전투의 피해를 계속 복구하느라 함재기 운용효율이 뚝 떨어진 채였기 때문에,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은 헨더슨 비행장을 거점으로 삼아서 활동해야 했다. 만일, 헨더슨 비행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절름발이 신세인 엔터프라이즈만 투입되었다면 주간에 일본 함대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고, 일본군의 물자 수송도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 해전의 경과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군 수송함대를 박살낸 건 미군 항공기들이었고, 일본 함대는 좋든 싫든 야간전을 강요받으면서 날이 밝으면 반드시 퇴각해야 하는 부담을 져야 했다. >"...And then there was one patched-up carrier." - Rear Admiral Thomas C. Kinkaid >"...그렇지만 응급수리된 한 척의 항공모함이 남아있었다." - 해군소장 토마스 C. 킨케이드 반대로 [[산타크루즈 해전]] 이후 일본군은 동원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없어 대규모 항공작전이 불가능해진 반면, [[엔터프라이즈]]는 적 수상함의 공격에서 자유로운 항공모함의 이점을 살려 헨더슨 비행장의 플랜 B로 활동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일본 해군은 미국의 항공모함이 아직도 작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고, 헨더슨 비행장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도 단념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